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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캔디 / 비기너스 . 가을을 닮은 사랑영화. 전진희 - breathing in october 공기가 차가워지고 옷을 하나 둘 껴입게 되는 날씨가 되면 생각나는 영화들이 있다. 등장인물이 적고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인물의 세세한 감정을 엿볼 수 있는 사랑 영화들. 와 같은. 마치 청춘과 중년의 사랑에 대한 섬세한 에세이를 읽는 것 같은. 어떨 땐 자조적이기도 하고 어떨 땐 냉철한 감각으로 사랑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영화들 말이다. 1. 영화의 첫 장면에 근거하자면 댄(히스 레저)과 캔디(애비 코니쉬)의 사랑은 구심력(원 중심으로 향하는 힘)보다는 원심력(원 중심에서 멀어지려는 힘)에 가깝다. 원통이 회전하면서 생기는 원심력을 이용한 놀이기구 속에서 둘은 땅에서 발을 떼고 그 힘에 몸을 맡긴다. 하지만..
<영화리뷰> 헤어질 결심. 불안은 사랑의 현기증.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 말러가 알마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바친 곡이다. 현실에서 그들의 사랑이 순탄치 않았던 것과 영화를 겹쳐 보아도 흥미로운 점이 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얼굴들이 있다. 나에겐 소년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은 나이 든 남자의 얼굴과 엄마의 얼굴을 너무 일찍 가져버린 여자의 얼굴이 그렇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소년과 엄마의 얼굴을 발견할 때 사랑에 빠진다. 이것은 내 편견임이 분명하지만, 특히 사랑에 관한 이야기에서, 남자는 소년으로 돌아가고 여자는 엄마로 성장한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경우 남자가 한걸음 느린 것처럼 보인다. 여자의 마음을 뒤늦게 알게 되는 남자는 회한에 빠져 그리워하고 괴로워한다. 누군가에겐 그 역할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이성이든 동성이든 또는 다른 형태의 ..
<영화리뷰> 내가 누워있을 때(When l sleep). 시선이 향하는 곳.(스포포함)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영화리뷰> 당신얼굴 앞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 홍상수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한편으론 매우 쉽다. 이상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렇다.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될 수도 저것이 될 수도 있는 그런 모습이다. 그의 영화를 난해하고 모호한 메타포로 가득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일상의 현실을 아주 단순하게 카메라에 담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둘 중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니겠지만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 있다. 나는 사람들이 홍상수라는 이미지에 대해 많은 오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의 그를 둘러싼 이슈들이 그런 오해를 더 거대화시키는 것을 부정할 순 없겠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어쨌든 그는 그 ..
<영화리뷰> 이제 그만 끝낼까 해 I’m thinking of ending things. 영화의 시작. 꽃과 식물이 가득 그려진 벽지가 보이고 여자의 목소리로 내레이션이 흐른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이런 생각이 한 번 찾아오면 내 머리를 계속 지배한다. 어쩔 도리가 없다. 그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다. 먹을 때, 잠자리에 들 때, 잠잘 때, 깨어날 때 늘 그 생각뿐이다. 오래전부터 생각한 건 아니다. 새로운 고민인데 동시에 오래된 느낌이다. 언제 시작됐더라? 새롭게 빚어낸 생각이 아니라 내 머리에 박혀 있던 거라면? 입 밖에만 내지 않은 거라면?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끝이란 항상 이런 것인지도. 제이크가 말했다. ‘때로는 생각이 행동보다 진실과 현실에 가까워. 말과 행동은 속여도 생각은 그럴 수 없거든.’ 도로는 텅 비었다. 주변은 조용하고 적막하다...
<영화리뷰> 세자매. 지워지지 않는 폭력의 표식. 흑백의 화면 속, 손을 꼭 잡고 뛰고 있는 아이 둘의 뒷모습이 보인다. 둘은 어딘가로 도달하기 위해 뛰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뛰고 있다. 어디로든 갈 수 있으면서도 어디로 갈지 모르는 뜀박질이다. 화면이 컬러로 바뀌고 나이가 든 세자매가 뒷모습으로 한 명씩 소개된다. 그녀들은 어릴 적의 그곳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난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카메라를 등진 채 그곳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일까. 그녀들은 벗어나야 할 곳은 명확했지만 가야 할 곳은 정해지지 않은 채 각자의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다. 어디로 도달한 걸까. 어딘가로 도달하긴 한 걸까.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근원적으로 대물림되는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세자매의 분투를 치열하게 그려낸다. 때론 과잉으로 보..
<영화리뷰> 듄. 내 목소리가 모래 언덕을 넘어 그 곳에 닿기를.(스포주의) 드니 빌뇌브는 아주 이상한 감독이다. 분명 원작이 따로 있는 작품 위주로 필모그래피를 채워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들 속에 흐르는 공통의 메시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작가주의 감독들의 영화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기분을 원작이 전부 다른 작품에서 해석해 낼 수 있는 연출력이라는 점만 보더라도 그의 신작을 기대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하지만 은 개봉 전부터 우려의 목소리 또한 적지 않았다. 원작의 명성이 엄청난 데다 데이빗 린치가 연출한 (‘듄’과 같은 뜻인 ‘모래 언덕’. 당시엔 저 제목으로 개봉했었다.)의 처참한 실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대와 우려를 양손에 쥐고 늦은 밤 천호동의 한 아이맥스관에 자리를 잡았다. 나에게 은 드니 빌뇌브가 줄곧 해오던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더 확신하게 해주는 작품이..
<영화리뷰> 미나리. 어디서든 뿌리 내리는 미나리의 마법처럼.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미나리는 어디서나 뿌리를 내릴 수 있다. 는 뿌리내리는 것에 대한 영화다.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 삶이라는 평야에. 가족이라는 물가에. 우리는 미나리처럼 뿌리 내릴 수 있을까. 지루한 표정의 데이빗(앨런 김)이 보인다. 캘리포니아를 떠나 아칸소로 오는 먼 길을 내내 그는 그런 시큰둥한 표정으로 일관했을 것이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은 엄마인 모니카(한예리)의 얼굴에는 드러나지만 그에게선 찾아볼 수 없다. 덜컹거리는 차의 소음 위로 점점 크게 울려오는 데이빗의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그 소리에 집중하고 있다. 생명의 징검다리를 하나씩 하나씩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다음 심장 소리를 기다리는 것이다. 다음 심장 소리가 멈출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품고서. 영화 중반부..